독후감

단숨에 읽었다. 오랜만에 책을 독파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겉표지를 벗기면 나오는 파란색 디자인이 정말 매력적인 책이다. 종이 느낌과 무게도 완벽하다. 내용이 아니더라도 참 손에 들고 있기 즐거운 책이다.


싫어하는 일이라고 낙담하지 않고, 괴롭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고, 재미없는 일에서 스스로 재미를 찾으면 결국 결과를 낸다. .60

일점돌파一點突破·전면전개全面展開 p.61

사면초가 상황에서는 무엇이 되었든 원활한 것을 하나 만든다. 그런 후에 옆으로 확장해간다. p.61


일점돌파의 점點은 무려 점찍을 점이다. 가게 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펜으로 찍는 점인 것이다. 갑자기 미친 듯한 집중력이 그려진다. 점 하나를 돌파하는 것이다. 


제정신을 유지하는 방법(p.190-195)이 인상적이었다. 본인의 심리 상태 파악, 말투, 눈과 귀로 소비하는 컨텐츠에 대한 주의, 자신에게서 원인 찾기, 우주 떠올리기. 미친 듯이 돌아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같이 미쳐버리지 않고 그나마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되었다.


머리말에 나오는 솔직함이 인상적이었다.


인생을 증오하지 않게 된 것은 겨우 작년쯤부터다. p.8


그리고 끝까지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실제로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 있는 규모의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을 봐왔고 그 사람에게서는 이런 솔직함을 느끼지 못했기에 신기하고 신선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솔직하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솔직한 척을 한다. 자신의 약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는 듯한 내용을 나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집이 있다. "내가 이렇게 솔직하고 다 까발려 놓는데 나처럼 이런 사람이 어디 있어?!"와 함께 숨겨진 의도. 


책에서 이 사람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솔직한 척 한다거나 자기 반성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오히려 이 사람이 지쳐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자신의 지난 16년을 정리하면서 훌훌 털어버리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보여주기나 마케팅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쓴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꾸밈이 없다. 시원하다. 신선하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그럴 확률이 훨씬 높다. 직접 만나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미디어에 비춰지는 모습, 자신이 내놓는 모습은 이제는 믿기가 힘들다. 이 사람의 직원과 얘기해보고 싶다. "아, 그 책은 다 개소리에요."라고 말할 지, "그 정신 없는 와중에 계속 일기를 쓰고 나중에는 책까지 낸 우리 사장님을 저는 정말 존경합니다."라고 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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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서를 읽은 것 같지가 않다. 가네시오 가즈키의 소설을 한 편 읽은 것 같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읽은 것 같다. 그러니까 분명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이 책을 다시 읽을 거다. 항상 들고 다니는 책 목록에 추가할 책을 하나 더 찾게 되어 기쁘다.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 Never never never give up!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책인데 두께도 있고 왠지 읽는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읽고 실천해야 하는 내용으로 보이는데 그럴 정신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요즘 책을 읽고 있는 여세를 몰아-<Fly Daddy Fly>, <발로 차고 싶은 등짝>, <호밀밭의 파수꾼>, <양말도깨비> 1권-책을 펼쳤다.


책을 읽기 전에 박경철을 생각하면 안철수를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대체 이 시골의사는 요즘 뭐하고 있나가 궁금해졌다. 나무위키에서 박경철을 검색해보고 싶은 호기심에 휩싸였으나 그러면 선입견이나 편견이 생겨서 책을 읽는 동안 내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서 멈췄다. (대신 뒷날개에 나온 블로그 주소가 blog.naver.com/dondodonsu이길래 돈오돈수를 검색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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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작해보니 역시 이건 내용을 읽고 생각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되는-쓸모가 없는-책이다. 이런 류의 책들은 그냥 읽기만 하면 정말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실천이 없는 지지리도 못난 인간이 될 것 같아서 부담스럽다. 


읽는 모든 걸, 읽는 족족 실천할 자신은 없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한 섹션을 읽고 바로 바로 독후감을 쓰기로 했다. 이걸로 읽은 내용에 대한 생각이 좀 정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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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의 제목은 '당신은 지금 당신 삶의 주인인가!

1장의 제목은 '나를 찾아가는 시간'

첫번째 섹션의 제목은 '방황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파우스트 이야기를 꺼내며 결국 인간은 방황하더라도 그 방황이 노력의 산물인 이상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방황하고 있다는 느끼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 위로가 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파우스트가 자신을 욕망을 위해 악마와 계약한 이야기. (몇 백년 전 이야기가 지금의 상황에도 바로 적용될 수 있는 걸 보니 고전의 힘은 대단하다)


사회 전체가 헬레나의 입술을 얻기 위해 악마와 계약한 파우스트 박사의 아바타가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나의 방황에 대해 위로 받고 잘못된 사회에 손가락질하다 보면 차가운 채찍이 날아든다.


고민과 방황은 마치 숨 쉬고 밥 먹는 것처럼 우리와 함께한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방황하며 노력하는 것, 주저앉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대신 노력하지 않는 방황이나 방종, 즉 욕망의 좌충우돌은 생에 대한 모독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며 황무지를 여행하는 것만이 진정한 방황이다. 그 과정에서 살이 찢어지고, 고름이 흐르고, 굳은살이 박혀 나무껍질처럼 단단해질 때, 비로소 온전한 내가 세워지는 것이다. 고민을 두려워 말자. 그리고 우리 마지막 순간까지 방황해보자.


'아, 방황이라고 생각하며 위로 받고 있었는데 사실 나는 게으른 걸 방황이라고 자기 합리화 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는 대목이다. 별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는데 나도 같이 껴서 파우스트가 받은 구원을 같이 받으려고 한 것 같아서 찔린다. (생에 대한 모독을 하고 있던 중에 본의 아니게 옆에 가만히 서 있던 파우스트까지 모독한 기분.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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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다리


1. 책의 전체적인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든다. 특히 목차의 디자인이-설계적 디자인과 시각적 디자인 둘 다-정말 좋다. 설계는 수신제가평천하를 생각나게 해서. 시작적으로는 색깔이랑 폰트, 그리고 오른쪽 하단에 대각선으로 빗금쳐져 있는 것.



2. 사실 <파우스트> 안 읽어봄 (여기에 메롱 이모티콘 넣고 싶은데 적절한 이모티콘이 없음)


3. '자기혁명'과 '나 경영'의 비슷함. 자기계발. "당신은 지금 당신 삶의 주인인가!"라는 프롤로그.사실 인간이 가장 control하고 싶은 대상은 자기 자신일지 모른다.

올해 초에 LA에 갔을 때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었는데 그 때 산 것 같다. 유명한 책이라서 골랐는데 사면서도 '과연 이걸 읽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요즘 새로운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잘 되지 않아서 (이 글도 잘 쓰려고 하면 결국 못 쓸 것 같아서 아무렇게나라도 우선 쓰기로 하고 앉아서 쓰고 있다) 즐겨 읽는 가벼운 소설 몇 권만 계속 읽고 새로운 책은 도저히 못 읽고 있었다. (그 때 중고서점에 갔을 때 산 고전 같은 유명한 독일 작가의 책이 있는데 항상 몇 장 못 읽고 잠들어서 몇 개월째 침대 옆에 있다)


책장에 <발로 차고 싶은 등짝>을 꽂아놓으면서 다음 읽을 책을 고르다가 이 책을 골랐다. 과연 몇 개월에 걸쳐 읽게 될지, 중간에 포기하게 될지, 읽다가 버리지는 않을지 모르는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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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읽기 시작하면서 든 생각은 '이게 현대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욕이 난무한다. '개새끼'가 나왔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이거 계속 읽어도 되는건가?'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나오는 욕을 보면서 나는 이게 영어로 B로 시작하는건지, M으로 시작하는건지, S로 시작하는건지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영어로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거의 막판에 나오는 여동생 피비의 학교와 박물관에서 보는 욕-*하자-은 영어로는 전혀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건 'Let's f***'이었는데 실제로는 'F*** you'였다. (독후감을 쓰는데 욕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쓰게 될 줄이야)


1판이 85년에 발행되서 그런걸까? <호밀밭의 파수꾼>은 당시의 은어slang을 알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는데, 우리나라의 85년의 은어로는 그 단어가 맞을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아무도 그런 욕을 안 쓴다) 지금 번역했다면 '*까' 정도가 가장 찰지고 적절한 번역일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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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주위 사람들 다 싫어하면서 계속 욕을 남발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대체 하버드 다니는 놈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걸 읽은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체 이게 왜 뛰어난 작품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이 책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고 있었다.


물론 빠른 속도라함은 몇 시간 만에 이 책 한 권을 모두 읽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럴 여유가 없다) 책을 편 지 일주일도 안 되서 모두 읽었다는 것이다.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자기 전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에 틈틈이 계속 손이 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흡입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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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시간은 굉장히 울적해졌던 것 같다. 난 내가 읽는 것이나 보는 것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는 편이라 홀든이 화내거나 우울해할 때마다 나도 화가 나고 우울해졌다. 


싸움도 못하면서 말로 싸움을 걸고 주위 사람들을 역겨워하고 싫어하는 홀든은 밉지 않았다. 모리스와 서니가 떠나고 나서 복부에 총을 맞은 듯이 또라이짓을 하는 홀든도 부끄럽지 않았다. 나도 분노하면서도 겁쟁이고,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싫어하고 술도 안마셨으면서 취한 척 또라이짓을 해본 적이 있으니까. 그래서 조금은 주관적으로 홀든 편을 들어주며 책을 읽었다.


그런 홀든이 어딘가 잘못된게 아닐까, 홀든이 틀린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건 루스에게 무례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을 때다. '아, 선을 넘었다. 선을 넘는구나.' 가장 객관적이고 깨끗한 척하며 어른처럼 굴던 홀든이 어린애처럼 보였다.


그 후로도 홀든이 돌봄caring이 필요한 아이처럼 느껴진 대목이 서너군데 있었다. 피비를 보기 위해 집에 들렀다가 나갈 때도 그랬다. 


웬일인지 모르지만 나갈 때가 들어올 때보다 더 쉬웠다. 이제 붙잡힌다 해도 아무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붙잡을 테면 붙잡으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붙잡아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 p.266


홀든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앤톨리니 선생이 홀든에게 하는 말들을 읽으면서 더 확고해졌다. 그리고 나도 들을 필요가 있던 이야기들이라 고마웠다. 그 선생은 술을 마시면서도 꽤나 진지하고 날카롭게 필요한 조언들을 해줬다.


무엇보다도 네가 인간 행위에 대해 당황하고 놀라고 염증을 느낀 최초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그런 점에서 너는 혼자가 아니야. ...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네가 현재 겪는 것과 똑같은 고민을 한 사람은 수없이 많아.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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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나오는 며칠의 기간 동안 홀든은 자주 울적해하고 몇번이나 울 뻔 한다. 그러다가 피비가 자신의 크리스마스 용돈 모두를 내어줄 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 때 나도 모르게 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나에게는 홀든이 신경질적인 예민함과 호불호의 끝장으로 마음을 단단히 잠그고 보호하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그렇게 하기에. 


하지만 가끔 사람들의 진심이,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예술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이 모든 것을 뚫고 들어와 나의 견고한 방어기제를 무너뜨리고 마음 깊이 있는 위로가 필요한 어린 아이의-나의-손을 잡을 때가 있다. 그런 때에는-이 책에 자주 나오는 표현대로-손을 들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참아 왔던, 모아 왔던 눈물이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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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홀든에게 공감할 수 있었기에, 홀든이 겪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기에 나는 이 소설이 왜 좋은 소설인지 알 수 있었다. ('현대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윌리엄 포크너의 말에 공감한다'라고 쓰기에는 나는 현대 문학을 그다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재밌었다. 이게 중요하다. 난 이 책이 재밌었다. 영어로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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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다리


1. <위대한 개츠비>도 지금 읽으면 재밌을지 모른다.


2. 처음으로 뉴욕에 가보고 싶어졌다. 홀든이 걸었던 곳들을 보고 싶어졌다.


3. <Into the Wild>가 생각났다.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사람들에게 염증과 역겨움을 느껴서 알래스카로 떠나버린 Christopher. 피비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혼자 떠나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Happiness is only real when shared"




4. 너무 우울해져 버릴까봐 좀 빠져들면 일부러 책을 덮고 비긴어게인 에피소드를 하나 보면서 기분전환을 했다. 그러다가 박정현 공연을 보면서 운 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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