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3일

2019. 10. 23. 16:41

<2분 전만 해도 22일이었는데 어느새 23일이 되었다. 11일 전만 해도 너는 살아있었는데 이제는 없다.>


오밤 중에 글을 쓰려니 내가 무슨 헛소리를, 얼마나 길게 할 지 걱정이 되면서도, 이걸 안 쓰면 내가 제대로 못 넘어갈 것 같아서, 써야겠다.


어디서부터 써야하나. 


소식은 폰에 CNN 기사 알람이 떠서 봤어. 기사가 많이 나고 나서 내가 f(x) 팬인 걸 아는 여러 사람한테서 괜찮냐고 연락이 왔어. 짧게 말하자면 아무렇지도 않기도 하고, 하나도 안 괜찮기도 해.


처음에 기사를 보고 화가 나더라. 사람들이 원망하고 있는 악플러들한테 화가 난 건 아니고, 너한테 화가 났어. 난 너를 미워했었거든. 이게 되게 복합적인 감정인데, 내가 정말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 이혼해서 우리 두고 간 엄마가 위험한 병에 걸려서 입원한 사진이 페북에 올라왔을 때. 그 날, 되게 화가 나면서 펑펑 울었어.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연예인인 너한테, 그런 비슷한 감정을 가졌다는게 참 웃기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함갤에는 아직 안 갔어. 후폭풍이 무서워서.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지가 않더라. 


내가 처음부터 너를 미워했었던 건 아니야. 1집 때 농구 경기 하프 타임에 공연하는 니 기사 사진에 어떤 쓰레기가 쓰레기 같은 댓글을 달아놨길래 거기서 열심히 싸우기도 했어. 10년이 지났는데도 그 댓글이 생각나. 그 쓰레기는 지금도 더러운 댓글을 달면서 지내려나. 뉴질랜드 리얼리티 때 다섯이서 노는 거 보면서 진짜 좋았었는데... 


레라 끝나고 활동이 엎어지고, 니가 공개 연애를 하고, 탈퇴를 하고, 애들이 힘들게 넷이서 컴백을 해서 1위하고 울고. 너에 대한 원망이 있었지만, 그냥 '너는 니 갈 길 가고, 우리는 우리 길 가고'라고 생각했어. 니 기사는 안 읽었고 니 프로도 안 봤고 처음부터 관심 없었던 연예인 것처럼 했어. 니가 함수일 때는 <아름다운 그대에게>도 다 챙겨 보고 그랬었는데...


니가 항상 불안불안해 보이기는 했어. 한 번도 널 안 만나 본 내가 뭘 알기나 하겠냐만은, 그래도 내 눈에는 니가 항상 그래 보였어. 니 추모 글에 사람들이 다 예쁜 사진을 올리더라. 난 이 사진이 제일 좋아. 소주잔 씹어먹는 거 보면서 사실은 너는 어두운 면이 크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니가 추천하는 음악이랑 니 남친을 보면서, 뭔가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자기 우상이 섹스 피스톨즈라고 한 게 생각이 났어. 해리 포터와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간극이 큰 것처럼 f(x)의 설리와 최진리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구나. 반짝반짝하고 방긋방긋 잘 웃어야 하는 걸그룹하는 게 참 힘들겠다.



우와, 헛소리를 엄청 길게 하네.


10년, 아니면 20년이 지나면, H.O.T.나 god나 핑클처럼 다시 모여서 작게나마 뭐라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건 안되겠구나. 뉴질랜드에 묻은 타임캡슐 찾으러 가야지, 설리야.


우와, 지금까지 안 울었었는데 이제 눈물이 나네. 역시 새벽에 이딴 거 쓰는게 아닌데.


설리야, 아니, 진리야. 너 좋아하고 사랑한 사람 많았고, 지금도 많다. 다음에는 연예인 하지 말고, 너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너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렴. 






<자살>


글을 미친듯이 길게 쓰게 되네요. 누구한테 얘기하는건지 모르겠는데, 다 써야겠습니다.


사실 설리 일이 있기 몇 주 전부터 종현이 생각이 났고 자살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정리를 위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터졌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이 글은, 설리 일이 있기 전에 쓰려고 생각했던 글이란 말입니다. 제가 글 쓰는 사람도 아니고, 위에 헛소리한 것도 퇴고도 하지 않을건데, 그냥 여기는 제 공간이니까 저는 여기 주저리주저리 쓰면서 생각이나 쭉- 정리하려고 합니다.


종현이 소식을 듣고는 참 한 달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출퇴근할 때마다 종현이 노래를 들었고 울었던 것 같네요. 


그렇게 한 달을 지내면서 자살을 처음 생각하게 되는 건 위기 상황에 케이스를 열고 누를 수 있는 빨간 버튼이 보이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도망칠 수 있는 출구 같은 게 보이는거죠. 이제 힘들 때마다 그 쪽, 버튼 방향을 보게 됩니다. 가끔은 그 투명 케이스 위에 손을 얹고 만지작만지작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한테도 이렇게 느껴지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이렇게 느껴집니다.


정확하게 언제 처음 자살에 대해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 차려보니 그 버튼이 있었습니다. 약 15년쯤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 버튼은 멀리 있었습니다.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갑자기 그 버튼이 몇 걸음만 걸어가면 닿는 곳까지 왔습니다. 그 날은 아는 동생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아는 언니한테도 전화를 했습니다.


자살을 안 한 이유는 제가 교회를 다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위로를 많이 받아서냐고요? 물론 평소에 복음을 통해 위로를 많이 받고 신을 정말 사랑하고 심판과 내세를 굳게 믿지만, 그래서 그런 건 아닙니다. "저 집 딸이 자살했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게 싫어서 안했습니다. 동생들 혼삿길이 막힐까 그랬습니다. 내 선택을 내 가족은 이해해주겠지만, 내 가족이 내 선택 때문에 욕 먹는건 생각만해도 화나는 일이라서 도저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격이 더러운 게 이럴 때는 참 도움이 되네요. (이제 이런 글을 썼으니, 동생들 혼삿길이 막히고 가족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수도 있겠네요. Oh, well, 어쩔 수 없죠.)


이 글을 왜 쓰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나한테 좋을 게 1도 없는 것 같은 이런 글을. 사실은 쓰는 게 아니라 토해내는 것 같습니다. 그냥 토해내야 할 것 같아서 토해내는 글입니다.


저는 참 행운아입니다. 저를 사랑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또 그걸 '알고' 있으니까요. 가끔은 그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때도 있고, 혼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금방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사람들과의 추억에서 많은 힘을 얻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게 거의 매일 빨간 버튼이 보여도 그 위에 단단한 케이스가 씌워져 있고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꼭 알려줘야 합니다. If you love someone, you must let them know.


"알았으니까 그만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알려주세요.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말로, 눈빛으로, 행동으로, 사랑한다고 알려주세요. 완벽하지 않은 사랑이라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불완전하게 계속 사랑하면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해주면 자살하지 않을 거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틀렸으니까요.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 및 정신 질환은 병이고, 사람의 감정적인 면역력을 완전 박살내니까요. (안 그러면 그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그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았을까봐? 절대 그럴리 없지.)


그래도 우리는 계속 사랑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살을 예방하려고 사랑하는 게 아니니까요. 누가 자살했다고 해서 우리 사랑이 실패한 게 아니니까요.


굳이 말하자면 자신을 위해 그 사람을 사랑하라고 하고 싶네요. 자살이든, 병이든, 자연사든, 우리는 갑자기 혹은 천천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됩니다. 그 때,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지금' 열심히 사랑해야 합니다. 후회하지 않을 나를 위해, 지금 열심히 사랑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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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일

2019. 8. 2. 17:16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결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른손에는 검은 권총이 쥐어져 있다. "오른손은 검은 권총을 쥐고 있다"라는 표현이 더 옳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무엇인가가, 누군가가, 내 오른손에 검은 권총을 쥐어주었다.


총구는 내 오른쪽 관자놀이를 향해 있다. 닿아있지는 않다. 하지만 마치 이미 총구가 닿아 있는 것처럼 내 온 몸의 신경 세포가 오른쪽 관자놀이에 집중되어 있다. <터미네이터>에서 보던 것처럼 얼굴 오른쪽 피부가 액체처럼 움직인다면 관자놀이에 있는 세포는 총구를 힘껏 잡아당기면서 외칠 것이다. "이렇게 애간장 태울바에야 그냥 당장 쏴버려! 사람 미치게 하지 말고!"

거리가 멀지 않으니 총에서 나는 비릿한 쇠 냄새가 난다. 분명 처음 권총을 케이스에서 꺼냈을 때는 냄새가 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총구가 나를 향하는 그 순간부터 시간도 멈추고 시각과 청각이 마비되버리고 후각만 미친듯이 날뛰는 것 같다. 쇠 비린내가 점점 심해져서 코를 마비시키고 머리를 핑 돌게 한다. 역하다. 너무 역하다.


시각이 마비된 것 같다고 했지만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나는 눈을 뜨고 있고 분명히 뭔가를 보고 있다. 하지만 보고 있는 장면이 뇌에 입력되지 않는다. 죽을 때를 맞이한 사람은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면서 시간 정지 기능을 사용하는 슈퍼히어로처럼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나? 아니, 거짓말일리가 없다. 그냥 내 나약해빠진 뇌가 패닉 어택을 받은 게 분명하다. 평생 살면서 지금 내가 실행하고 있는 이 아이디어 말고는 변변찮은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한 내 못난 뇌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못난이 짓을 하고 있는거다. 루저Loser.


평균의 사람이 하는 정도만 하고 싶었다. 사는 동안 평균치를 못 맞춘 나는, 죽기 직전의 이 순간까지도, 이 순간이 "사는 동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평균치를 못 맞추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인류의 하향평준화에 기여한다. 멋지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소리가 정보를 수집하는데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실내라면 미세하지만 냉장고 모터 소리라던가 컴퓨터 팬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 도심이라면 차 엔진 소리와 경적 소리가 들릴 것이고 주택가라면 시간에 따라 아이 소리라던가 아줌마들의 대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산 속인가? 하지만 풀소리도,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뒷산을 오를 때마다 항상 들리던, 이름을 알아보겠다고 해놓고는 끝까지 알아보지 않았던, 그 이름 모를 새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디지?


역한 쇠 냄새가 더 심해지는 걸로 봐서는 실내인가 보다. 뇌가 냄새에 절여진 것 같다.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비린내는 송곳이 되어 콧구멍을 타고 올라가 전두엽 쪽을 찌르고 있다. 나를 죽이기라도 할 셈인지 송곳 난도질을 멈추지 않는다. 총이 아니라 냄새로 먼저 죽을 것 같다. 냄새를 덜 맡게 총을 멀리 던져 버리고 싶다.


총을 던지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손에 닿은 쇠의 감촉이 느껴졌다.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색깔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물건. 하얀색이나 은색은 어울리지 않아. 검은색. 915g이 이렇게 무거웠었나? 아, 미끌미끌. 손에서 땀이 나고 있다. 이러다가 총이 미끄러지면서 방아쇠 쪽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죽으면 어쩌지? 


분명히 죽으려고 노력 중인데, 죽는 것이 걱정이 된다.

아니야, 난 이렇게 실수로 죽고 싶지 않아.

아니야, 날 죽이는 일에서까지 실수하고 싶지 않다고.


실수라면 지긋지긋하다. 몇 년 전 그 일이 생각난다. 내가 맡은 일 중에 처음으로, 어, 안 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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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샜다.

2019. 3. 12. 22:05

2019년 3월 11일 - 밤을 샜다. 


정확히 말하면 12일 아침 7시 30분 경에 자러 갔다. 아빠 모닝콜이 울리는 걸 듣고 자러 갔다.


체력 때문에 밤을 못 샌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마치 10대 때 하던 것처럼 너무 멀쩡하게 밤을 샜다. 물론 오른쪽 손가락 군데군데와 손목이 아프다. 마우스를 오래 쥐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너무 아파서 자러 가기 전에 양치질 할 때 왼손으로 칫솔질을 했다.


밤 샜다는 이야기를 왜 하고 싶었던 걸까? 


스스로도 놀랐다는 것. 예전처럼 영화 보고 그러면 멀쩡히 밤을 새울 수 있다는 것. 사실은 밤을 새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잠을 못 자서 그랬다는 것. 


2019년 3월 12일 - 정오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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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일

2018. 4. 11. 13:34

오늘 서러운 일이 있어서... 울려고 했는데 울음이 팍 터져 나오질 않아서 밖으로 갔다.


주유소에 가다가 방향을 바꿔서 영화관으로 갔고, 영화관으로 가다가 방향을 바꿔서 스타벅스로 갔다. 거의 8시 50분쯤에 drive through로 가서 핫초코랑 크로아상 샌드위치를 샀다. 주차장에 차 대놓고 먹은 다음 주위에 있는 괜찮은 길에 가서 주차하고 좀 걸었다.


걸으면서 든 생각은.. "자전거에서 우는 것보다 벤츠에서 우는 게 편하다"라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글. 차가 있으니까 집에서 나왔고, 돈이 있으니까 핫초코를 사먹었다. 


걷고 있는데 옆에서 기차가 지나갔다. 분명 지금 저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테지. 여기서 서러워하며 슬퍼하는 것도 시간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거다. 그리고 그나마 건강하니 걸어다니며 산책도 할 수 있다.


돈, 시간, 건강. 


인터넷에서 어디선가 봤던 세가지. 


젊을 때는 시간과 건강이 있는데 돈이 없고,

좀 나이 들어서는 돈과 건강은 있는데 시간이 없고,

늙어서는 돈과 시간은 있는데 건강은 없다던 그 말.


열심히 돈 벌어서 시간도 사고 건강도 챙겨서 다음에 서러운 일 생기면 또 차 타고 나와서 핫초코 사먹고 산책 다녀야지.


어차피 시간 지나면 왜 슬펐는지도 생각 안 날 일에 너무 시간 쓰지 말자. 생각나면 웃음 나는 것들을 하자. <Swing Girls>랑 <Hula Girls> 생각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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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하는 두번째 이유는 기록하기 위해서다.


내가 느꼈던 감정, 내가 했던 생각, 내가 했던 일과 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 기록하지 않으면, 붙잡아두지 않으면 다 흘러가고 빠져나가 결국 기억하지 못하게 될테니, 어딘가에는 흔적을 남겨놓고 싶다.


-


나에게는 hoarding하는 경향이 있다. 아빠는 항상 신문을 스크랩해두었는데 나중에 그 신문들은 10박스도 넘게 쌓였고 다시 보는 일은 없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다시는 보지 않았고 그닥 분류되어 있지도 않았으니 스크랩보다는... 다른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무섭게도 부모에게서 닮는 점들은 부분적으로 내가 골라서 닮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좋은 점도 싫은 점도 닮게 된다. 나는 아빠의 수집벽을 고스란히 가지고 왔다. 나도 신문을 모았다. 물론 다른 점은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그 신문을 분류했다는 정도다.


끝을 알 수 없는 양의 정보들이 온라인 상에 올라오기 시작하자 나의 수집벽은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나의 digital hoarding은 나의 네이버 블로그와 이메일 인박스, 페이스북, 그리고 휴대폰의 스크린캡쳐 폴더를 온갖 정보로 가득 채웠고 못 쓰는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Hoarder들의 집처럼 내 디지털 공간들에서는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정보들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게 되버린 것이다. 다 갖다버려야 되는데, 다 하나씩 보겠다며 버리지도 않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우리는 이사할 때마다 아빠가 10년 넘게 열어보지 않은 신문 상자들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내가 10년 넘게 모아온 이 정보들-네이버 스크랩, 페북 공유, 나에게 보내는 이메일, 휴대폰 스크린 캡쳐. 이걸 다시 보는 일은 잘 없다. 가끔 가다 정리해보려고 하지만 거의 손을 못 댄다. 그리고 모아지는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매일 늘어난다. 어느 정도의 저장강박증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


이 블로그가 그렇게 못 쓰는 곳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기록한다는 것은 능동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정보 저장은-저장 강박에 의한 거의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자동적인 행동일 경우에는 더더욱-기록이 아니다. 


이 블로그에는 내가 수집collect하는 것보다 만드는create 것들이 더 많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들이 잘 정리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필요할 때 정말 access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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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미뤄왔던 블로그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티스토리는 그냥 가입하면 되는건 줄 알았는데 초대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시작하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스킨을 꾸미는 것도, 네이버 블로그만 했던 나에게는 생소하다.


기본 스킨 중에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걸 골랐는데 프로필 사진으로 보노보노 사진을 넣었더니 진.짜. 안 어울린다....ㅋㅋㅋㅋㅋㅋ하지만 뭔가 어두운 면도 있고 철없고 애같은 면도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우선 두기로 했다.


-


블로그를 시작하려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다 적을 수는 없을 것 같고, 가장 큰 이유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머리에서 일어나는 오만 생각들과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그 속에 넣고, 또 글로 풀어서 써내려가다 보면 좀 내 인생을-그리고 그 안의 생각들과 일들을-도시나 인체의 지도처럼 복잡하지만 살아가기 위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도처럼 한 번에 내려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 말은, 우선은 이 공간이 지극히 나를 위한 이기적인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앞으로 목적이 바뀔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목적이 생기면 다른 블로그를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선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블로그 이름처럼 한 번에 한 걸음씩. One step at a time. Un paso a la vez. 그레이Grey가 말한 것처럼-



뭐든지 걱정만 많으면
잘될 것도 되다가 안되니까 


어차피 생각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깐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그냥 하는거다.


-


네이버 블로그는 왜 시작했더라? 

결국에는 엄청나게 스크랩만 하고 그냥 방치되었는데.


-


어쨌든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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