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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일

2019. 8. 2. 17:16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결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른손에는 검은 권총이 쥐어져 있다. "오른손은 검은 권총을 쥐고 있다"라는 표현이 더 옳을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무엇인가가, 누군가가, 내 오른손에 검은 권총을 쥐어주었다.


총구는 내 오른쪽 관자놀이를 향해 있다. 닿아있지는 않다. 하지만 마치 이미 총구가 닿아 있는 것처럼 내 온 몸의 신경 세포가 오른쪽 관자놀이에 집중되어 있다. <터미네이터>에서 보던 것처럼 얼굴 오른쪽 피부가 액체처럼 움직인다면 관자놀이에 있는 세포는 총구를 힘껏 잡아당기면서 외칠 것이다. "이렇게 애간장 태울바에야 그냥 당장 쏴버려! 사람 미치게 하지 말고!"

거리가 멀지 않으니 총에서 나는 비릿한 쇠 냄새가 난다. 분명 처음 권총을 케이스에서 꺼냈을 때는 냄새가 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총구가 나를 향하는 그 순간부터 시간도 멈추고 시각과 청각이 마비되버리고 후각만 미친듯이 날뛰는 것 같다. 쇠 비린내가 점점 심해져서 코를 마비시키고 머리를 핑 돌게 한다. 역하다. 너무 역하다.


시각이 마비된 것 같다고 했지만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나는 눈을 뜨고 있고 분명히 뭔가를 보고 있다. 하지만 보고 있는 장면이 뇌에 입력되지 않는다. 죽을 때를 맞이한 사람은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면서 시간 정지 기능을 사용하는 슈퍼히어로처럼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나? 아니, 거짓말일리가 없다. 그냥 내 나약해빠진 뇌가 패닉 어택을 받은 게 분명하다. 평생 살면서 지금 내가 실행하고 있는 이 아이디어 말고는 변변찮은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한 내 못난 뇌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못난이 짓을 하고 있는거다. 루저Loser.


평균의 사람이 하는 정도만 하고 싶었다. 사는 동안 평균치를 못 맞춘 나는, 죽기 직전의 이 순간까지도, 이 순간이 "사는 동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평균치를 못 맞추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인류의 하향평준화에 기여한다. 멋지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소리가 정보를 수집하는데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실내라면 미세하지만 냉장고 모터 소리라던가 컴퓨터 팬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 도심이라면 차 엔진 소리와 경적 소리가 들릴 것이고 주택가라면 시간에 따라 아이 소리라던가 아줌마들의 대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산 속인가? 하지만 풀소리도,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뒷산을 오를 때마다 항상 들리던, 이름을 알아보겠다고 해놓고는 끝까지 알아보지 않았던, 그 이름 모를 새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디지?


역한 쇠 냄새가 더 심해지는 걸로 봐서는 실내인가 보다. 뇌가 냄새에 절여진 것 같다.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비린내는 송곳이 되어 콧구멍을 타고 올라가 전두엽 쪽을 찌르고 있다. 나를 죽이기라도 할 셈인지 송곳 난도질을 멈추지 않는다. 총이 아니라 냄새로 먼저 죽을 것 같다. 냄새를 덜 맡게 총을 멀리 던져 버리고 싶다.


총을 던지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손에 닿은 쇠의 감촉이 느껴졌다.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색깔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물건. 하얀색이나 은색은 어울리지 않아. 검은색. 915g이 이렇게 무거웠었나? 아, 미끌미끌. 손에서 땀이 나고 있다. 이러다가 총이 미끄러지면서 방아쇠 쪽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죽으면 어쩌지? 


분명히 죽으려고 노력 중인데, 죽는 것이 걱정이 된다.

아니야, 난 이렇게 실수로 죽고 싶지 않아.

아니야, 날 죽이는 일에서까지 실수하고 싶지 않다고.


실수라면 지긋지긋하다. 몇 년 전 그 일이 생각난다. 내가 맡은 일 중에 처음으로, 어, 안 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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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2. 22:05

2019년 3월 11일 - 밤을 샜다. 


정확히 말하면 12일 아침 7시 30분 경에 자러 갔다. 아빠 모닝콜이 울리는 걸 듣고 자러 갔다.


체력 때문에 밤을 못 샌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마치 10대 때 하던 것처럼 너무 멀쩡하게 밤을 샜다. 물론 오른쪽 손가락 군데군데와 손목이 아프다. 마우스를 오래 쥐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너무 아파서 자러 가기 전에 양치질 할 때 왼손으로 칫솔질을 했다.


밤 샜다는 이야기를 왜 하고 싶었던 걸까? 


스스로도 놀랐다는 것. 예전처럼 영화 보고 그러면 멀쩡히 밤을 새울 수 있다는 것. 사실은 밤을 새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잠을 못 자서 그랬다는 것. 


2019년 3월 12일 - 정오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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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6

2019. 3. 6. 20:39

벌써 2019년 3월이다. 스킨을 바꿨다. 티스토리에서 제공한 기본 버전은 이건데 글쓰기 버튼이 없어서 순간 당황했다. 그리고 Recent Posts 이미지가 뜨지 않아서 검색하던 중에 스킨을 만드신 분 웹사이트에서 최신 버전을 다운받아서 새로 설치했다. 



아래가 가장 최근 업데이트 된 버전이다. Recent Posts 이미지도 제대로 뜬다. 글쓰기는 그냥 W 눌러서 쓰면 되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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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8  (0) 2018.04.09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책인데 두께도 있고 왠지 읽는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읽고 실천해야 하는 내용으로 보이는데 그럴 정신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시작하지 않고 있었다. 요즘 책을 읽고 있는 여세를 몰아-<Fly Daddy Fly>, <발로 차고 싶은 등짝>, <호밀밭의 파수꾼>, <양말도깨비> 1권-책을 펼쳤다.


책을 읽기 전에 박경철을 생각하면 안철수를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대체 이 시골의사는 요즘 뭐하고 있나가 궁금해졌다. 나무위키에서 박경철을 검색해보고 싶은 호기심에 휩싸였으나 그러면 선입견이나 편견이 생겨서 책을 읽는 동안 내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서 멈췄다. (대신 뒷날개에 나온 블로그 주소가 blog.naver.com/dondodonsu이길래 돈오돈수를 검색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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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작해보니 역시 이건 내용을 읽고 생각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되는-쓸모가 없는-책이다. 이런 류의 책들은 그냥 읽기만 하면 정말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실천이 없는 지지리도 못난 인간이 될 것 같아서 부담스럽다. 


읽는 모든 걸, 읽는 족족 실천할 자신은 없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한 섹션을 읽고 바로 바로 독후감을 쓰기로 했다. 이걸로 읽은 내용에 대한 생각이 좀 정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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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의 제목은 '당신은 지금 당신 삶의 주인인가!

1장의 제목은 '나를 찾아가는 시간'

첫번째 섹션의 제목은 '방황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파우스트 이야기를 꺼내며 결국 인간은 방황하더라도 그 방황이 노력의 산물인 이상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방황하고 있다는 느끼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 위로가 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파우스트가 자신을 욕망을 위해 악마와 계약한 이야기. (몇 백년 전 이야기가 지금의 상황에도 바로 적용될 수 있는 걸 보니 고전의 힘은 대단하다)


사회 전체가 헬레나의 입술을 얻기 위해 악마와 계약한 파우스트 박사의 아바타가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나의 방황에 대해 위로 받고 잘못된 사회에 손가락질하다 보면 차가운 채찍이 날아든다.


고민과 방황은 마치 숨 쉬고 밥 먹는 것처럼 우리와 함께한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방황하며 노력하는 것, 주저앉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대신 노력하지 않는 방황이나 방종, 즉 욕망의 좌충우돌은 생에 대한 모독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며 황무지를 여행하는 것만이 진정한 방황이다. 그 과정에서 살이 찢어지고, 고름이 흐르고, 굳은살이 박혀 나무껍질처럼 단단해질 때, 비로소 온전한 내가 세워지는 것이다. 고민을 두려워 말자. 그리고 우리 마지막 순간까지 방황해보자.


'아, 방황이라고 생각하며 위로 받고 있었는데 사실 나는 게으른 걸 방황이라고 자기 합리화 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는 대목이다. 별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는데 나도 같이 껴서 파우스트가 받은 구원을 같이 받으려고 한 것 같아서 찔린다. (생에 대한 모독을 하고 있던 중에 본의 아니게 옆에 가만히 서 있던 파우스트까지 모독한 기분.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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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다리


1. 책의 전체적인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든다. 특히 목차의 디자인이-설계적 디자인과 시각적 디자인 둘 다-정말 좋다. 설계는 수신제가평천하를 생각나게 해서. 시작적으로는 색깔이랑 폰트, 그리고 오른쪽 하단에 대각선으로 빗금쳐져 있는 것.



2. 사실 <파우스트> 안 읽어봄 (여기에 메롱 이모티콘 넣고 싶은데 적절한 이모티콘이 없음)


3. '자기혁명'과 '나 경영'의 비슷함. 자기계발. "당신은 지금 당신 삶의 주인인가!"라는 프롤로그.사실 인간이 가장 control하고 싶은 대상은 자기 자신일지 모른다.

올해 초에 LA에 갔을 때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었는데 그 때 산 것 같다. 유명한 책이라서 골랐는데 사면서도 '과연 이걸 읽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요즘 새로운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잘 되지 않아서 (이 글도 잘 쓰려고 하면 결국 못 쓸 것 같아서 아무렇게나라도 우선 쓰기로 하고 앉아서 쓰고 있다) 즐겨 읽는 가벼운 소설 몇 권만 계속 읽고 새로운 책은 도저히 못 읽고 있었다. (그 때 중고서점에 갔을 때 산 고전 같은 유명한 독일 작가의 책이 있는데 항상 몇 장 못 읽고 잠들어서 몇 개월째 침대 옆에 있다)


책장에 <발로 차고 싶은 등짝>을 꽂아놓으면서 다음 읽을 책을 고르다가 이 책을 골랐다. 과연 몇 개월에 걸쳐 읽게 될지, 중간에 포기하게 될지, 읽다가 버리지는 않을지 모르는채로.


-


처음에 읽기 시작하면서 든 생각은 '이게 현대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고?'


욕이 난무한다. '개새끼'가 나왔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이거 계속 읽어도 되는건가?'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나오는 욕을 보면서 나는 이게 영어로 B로 시작하는건지, M으로 시작하는건지, S로 시작하는건지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영어로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거의 막판에 나오는 여동생 피비의 학교와 박물관에서 보는 욕-*하자-은 영어로는 전혀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건 'Let's f***'이었는데 실제로는 'F*** you'였다. (독후감을 쓰는데 욕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하게 쓰게 될 줄이야)


1판이 85년에 발행되서 그런걸까? <호밀밭의 파수꾼>은 당시의 은어slang을 알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는데, 우리나라의 85년의 은어로는 그 단어가 맞을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아무도 그런 욕을 안 쓴다) 지금 번역했다면 '*까' 정도가 가장 찰지고 적절한 번역일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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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주위 사람들 다 싫어하면서 계속 욕을 남발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대체 하버드 다니는 놈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걸 읽은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체 이게 왜 뛰어난 작품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이 책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고 있었다.


물론 빠른 속도라함은 몇 시간 만에 이 책 한 권을 모두 읽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럴 여유가 없다) 책을 편 지 일주일도 안 되서 모두 읽었다는 것이다.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자기 전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에 틈틈이 계속 손이 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흡입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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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시간은 굉장히 울적해졌던 것 같다. 난 내가 읽는 것이나 보는 것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는 편이라 홀든이 화내거나 우울해할 때마다 나도 화가 나고 우울해졌다. 


싸움도 못하면서 말로 싸움을 걸고 주위 사람들을 역겨워하고 싫어하는 홀든은 밉지 않았다. 모리스와 서니가 떠나고 나서 복부에 총을 맞은 듯이 또라이짓을 하는 홀든도 부끄럽지 않았다. 나도 분노하면서도 겁쟁이고, 열정적으로 사람들을 싫어하고 술도 안마셨으면서 취한 척 또라이짓을 해본 적이 있으니까. 그래서 조금은 주관적으로 홀든 편을 들어주며 책을 읽었다.


그런 홀든이 어딘가 잘못된게 아닐까, 홀든이 틀린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건 루스에게 무례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을 때다. '아, 선을 넘었다. 선을 넘는구나.' 가장 객관적이고 깨끗한 척하며 어른처럼 굴던 홀든이 어린애처럼 보였다.


그 후로도 홀든이 돌봄caring이 필요한 아이처럼 느껴진 대목이 서너군데 있었다. 피비를 보기 위해 집에 들렀다가 나갈 때도 그랬다. 


웬일인지 모르지만 나갈 때가 들어올 때보다 더 쉬웠다. 이제 붙잡힌다 해도 아무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붙잡을 테면 붙잡으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붙잡아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 p.266


홀든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앤톨리니 선생이 홀든에게 하는 말들을 읽으면서 더 확고해졌다. 그리고 나도 들을 필요가 있던 이야기들이라 고마웠다. 그 선생은 술을 마시면서도 꽤나 진지하고 날카롭게 필요한 조언들을 해줬다.


무엇보다도 네가 인간 행위에 대해 당황하고 놀라고 염증을 느낀 최초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그런 점에서 너는 혼자가 아니야. ...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네가 현재 겪는 것과 똑같은 고민을 한 사람은 수없이 많아. - p.279


-


책에서 나오는 며칠의 기간 동안 홀든은 자주 울적해하고 몇번이나 울 뻔 한다. 그러다가 피비가 자신의 크리스마스 용돈 모두를 내어줄 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 때 나도 모르게 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나에게는 홀든이 신경질적인 예민함과 호불호의 끝장으로 마음을 단단히 잠그고 보호하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그렇게 하기에. 


하지만 가끔 사람들의 진심이,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예술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이 모든 것을 뚫고 들어와 나의 견고한 방어기제를 무너뜨리고 마음 깊이 있는 위로가 필요한 어린 아이의-나의-손을 잡을 때가 있다. 그런 때에는-이 책에 자주 나오는 표현대로-손을 들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참아 왔던, 모아 왔던 눈물이 터져 나온다.

 

-


내가 홀든에게 공감할 수 있었기에, 홀든이 겪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기에 나는 이 소설이 왜 좋은 소설인지 알 수 있었다. ('현대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윌리엄 포크너의 말에 공감한다'라고 쓰기에는 나는 현대 문학을 그다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재밌었다. 이게 중요하다. 난 이 책이 재밌었다. 영어로도 읽고 싶어졌다.


-


꽁다리


1. <위대한 개츠비>도 지금 읽으면 재밌을지 모른다.


2. 처음으로 뉴욕에 가보고 싶어졌다. 홀든이 걸었던 곳들을 보고 싶어졌다.


3. <Into the Wild>가 생각났다.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사람들에게 염증과 역겨움을 느껴서 알래스카로 떠나버린 Christopher. 피비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혼자 떠나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Happiness is only real when shared"




4. 너무 우울해져 버릴까봐 좀 빠져들면 일부러 책을 덮고 비긴어게인 에피소드를 하나 보면서 기분전환을 했다. 그러다가 박정현 공연을 보면서 운 건 비밀.

대학교에서는 경영학을 공부했다. 


아르바이트도 여러 번 하고 직장 생활도 한두번 했는데, 상부의 경영에 대해 답답하게 느꼈던 적이 많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나 가족을 보면서도 "이렇게 하면 더 좋을텐데"라고 무례한 생각을 한 적이 많다. 


"이렇게 하면 가장 좋다"라고 말로 어줍잖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항상 논거가 부족한 느낌이다. 거기다가 실제로 그 일을 나서서 할 생각은 거의 없다. 그냥 옆에서 널부러져서 훈수만 두려는 느낌이다. (옆에서 잔소리하는 모양새가 얼마나 꼴사납고 얄미울까)


-


미국이-내가 살고 있는 유타는 더욱이-한국에 비해 삶의 속도가 느림에도 불구하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모든 시간을 쏟고 있는 기분이다. 앞에서 터지는 일들을 해치우는데만 급급했다. 조금 먼 곳에서 상황을 보고 어떻게 살아갈지, 어디로 나아갈지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이 부족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보니, 지금 내 삶의 꼴을 보니 다른 사람의 삶이나 조직의 상태나 경영에 대해 손가락질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를 경영해보기로 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경영하다]가 이렇게 나와있다.


1. 기업이나 사업 따위를 관리하고 운영하다.

2. 기초를 닦고 계획을 세워 어떤 일을 해 나가다.

3. 계획을 세워 집을 짓다. 


이제 나는 나를 관리하고 운영해보려고 한다. 나의 삶의 기초를 닦고 계획을 세워 어떤 일을 해보려고 한다. 나라는 사람을 지어보려고 한다.


사실 몇번이나 시도했던 일이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려고 할 때 했었고, 살을 빼려고 거창한 계획을 세울 때도 생각했던 일이다. 새해마다 하고, 신정에 못할 때면 구정이 진짜 새해라며 다시 한 번 시도한다. 1년의 반이 지나갔으니 남은 반년은 최선을 다하자며 7월에 시도하기도 한다. 내가 태어난 때부터 세아려야 된다며 생일에 시작하기도 한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모든 시기를 변화를 위한 계기로 삼으려고 했다.


-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다. 새해도 아니고, 7월 1일도 아니고, 졸업도 아니고, 입사도 아니다. 그냥 지나가는 일요일이다.


내가 위기감이 들어서 시작하는 것 뿐이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위기에 빠진 기업에 새로 취임한 CEO처럼 '나 경영'에 시간을 투자해보기로 한다. '나'라는 기업은 지금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상태가 심각해서 대대적인 쇄신-그릇된 것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함-이 필요하다. 


아직은 정확한 목표가 없다. 어렴풋이 머리에 그려지는 원하는 모습이 있을 뿐이다. 너무 어렴풋해서 말이나 글로도 설명이 안 된다. 그냥 괜찮아지고 싶다. 괜찮은 사람이 되는게 아니라 이 구덩이를 나와서 괜찮은 상태가 되고 싶다. 대체 그게 뭔지 이제부터 찾아내야겠지.


-


자, 이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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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일

2018. 4. 11. 13:34

오늘 서러운 일이 있어서... 울려고 했는데 울음이 팍 터져 나오질 않아서 밖으로 갔다.


주유소에 가다가 방향을 바꿔서 영화관으로 갔고, 영화관으로 가다가 방향을 바꿔서 스타벅스로 갔다. 거의 8시 50분쯤에 drive through로 가서 핫초코랑 크로아상 샌드위치를 샀다. 주차장에 차 대놓고 먹은 다음 주위에 있는 괜찮은 길에 가서 주차하고 좀 걸었다.


걸으면서 든 생각은.. "자전거에서 우는 것보다 벤츠에서 우는 게 편하다"라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글. 차가 있으니까 집에서 나왔고, 돈이 있으니까 핫초코를 사먹었다. 


걷고 있는데 옆에서 기차가 지나갔다. 분명 지금 저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테지. 여기서 서러워하며 슬퍼하는 것도 시간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거다. 그리고 그나마 건강하니 걸어다니며 산책도 할 수 있다.


돈, 시간, 건강. 


인터넷에서 어디선가 봤던 세가지. 


젊을 때는 시간과 건강이 있는데 돈이 없고,

좀 나이 들어서는 돈과 건강은 있는데 시간이 없고,

늙어서는 돈과 시간은 있는데 건강은 없다던 그 말.


열심히 돈 벌어서 시간도 사고 건강도 챙겨서 다음에 서러운 일 생기면 또 차 타고 나와서 핫초코 사먹고 산책 다녀야지.


어차피 시간 지나면 왜 슬펐는지도 생각 안 날 일에 너무 시간 쓰지 말자. 생각나면 웃음 나는 것들을 하자. <Swing Girls>랑 <Hula Girls> 생각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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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하는 두번째 이유는 기록하기 위해서다.


내가 느꼈던 감정, 내가 했던 생각, 내가 했던 일과 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 기록하지 않으면, 붙잡아두지 않으면 다 흘러가고 빠져나가 결국 기억하지 못하게 될테니, 어딘가에는 흔적을 남겨놓고 싶다.


-


나에게는 hoarding하는 경향이 있다. 아빠는 항상 신문을 스크랩해두었는데 나중에 그 신문들은 10박스도 넘게 쌓였고 다시 보는 일은 없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다시는 보지 않았고 그닥 분류되어 있지도 않았으니 스크랩보다는... 다른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무섭게도 부모에게서 닮는 점들은 부분적으로 내가 골라서 닮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좋은 점도 싫은 점도 닮게 된다. 나는 아빠의 수집벽을 고스란히 가지고 왔다. 나도 신문을 모았다. 물론 다른 점은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그 신문을 분류했다는 정도다.


끝을 알 수 없는 양의 정보들이 온라인 상에 올라오기 시작하자 나의 수집벽은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나의 digital hoarding은 나의 네이버 블로그와 이메일 인박스, 페이스북, 그리고 휴대폰의 스크린캡쳐 폴더를 온갖 정보로 가득 채웠고 못 쓰는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Hoarder들의 집처럼 내 디지털 공간들에서는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정보들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게 되버린 것이다. 다 갖다버려야 되는데, 다 하나씩 보겠다며 버리지도 않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우리는 이사할 때마다 아빠가 10년 넘게 열어보지 않은 신문 상자들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내가 10년 넘게 모아온 이 정보들-네이버 스크랩, 페북 공유, 나에게 보내는 이메일, 휴대폰 스크린 캡쳐. 이걸 다시 보는 일은 잘 없다. 가끔 가다 정리해보려고 하지만 거의 손을 못 댄다. 그리고 모아지는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매일 늘어난다. 어느 정도의 저장강박증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


이 블로그가 그렇게 못 쓰는 곳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기록한다는 것은 능동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정보 저장은-저장 강박에 의한 거의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자동적인 행동일 경우에는 더더욱-기록이 아니다. 


이 블로그에는 내가 수집collect하는 것보다 만드는create 것들이 더 많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들이 잘 정리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필요할 때 정말 access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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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8

2018. 4. 9. 12:46

얼마나 안 어울리는지 저장해놔야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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